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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에 있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바쁘게 일하는 반면 특등석에 있는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 리처드 왓슨,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강의의 시대 종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든 지배 계층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육이었다. 2006년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제프리 힌턴이 딥러닝 논문을 발표하자 실리콘밸리의 상위 1%는 즉시 반응했다. 그들은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직감하고 2008년에 싱귤래리티 대학을 설립했다. 이 대학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주도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또한 2014년에 자녀들을 자퇴시키고 자신이 세운 사립학교 애드 아스트라에 입학시켰다. 하버드, 스탠퍼드, MIT, 예일과 같은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2012년에 강의 중심 수업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교육의 민주화를 내세우며 유다시티, 에드엑스, 코세라 같은 MOOC 기업을 설립해 강의를 인터넷에 공개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계속 강의를 들으며 인공지능의 종이 되도록 하고 정작 자교 학생들에게는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하여 인공지능 시대에 학문적 특권을 지키려는 의도는 아닐까?
일본의 국제 바칼로레아 도입과 페리 제독의 흑선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흑선을 이끌고 도쿄만에 도착해 개항을 요구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다. 메이지 유신의 핵심은 서양식 교육의 도입이었다. 150여 년이 지난 2013년, 일본은 또 한 번 교육 혁명을 단행해 2020년까지 입시 교육을 폐지하고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제 바칼로레아는 스위스에서 시작된 교육 방식으로 독서, 토론, 글쓰기를 교육의 중심에 둔다.
1997년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인류를 이기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서구권은 인공지능을 미래 문명의 핵심으로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연 대회에서 딥러닝 기술을 탑재한 '슈퍼비전'이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다. 이로써 서구권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을 완성한 셈이 되었다. 이후 2016년 서구권은 '알파고'를 한국으로 보내 공개 경기를 펼쳤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2014년 인공지능 '켄쇼'를 도입한 후 598명의 트레이더를 해고했다. 암 진단의 경우 인간 의사의 정확도는 약 80%에 그치지만 인공지능 의사 '왓슨'은 암 종류별로 90~100%의 진단 정확도를 보여준다. 약사도 마찬가지로 인간 약사는 100건 중 약 1.7건을 잘못 조제하지만 UCSF 메디컬 센터는 인공지능 약사를 도입해 조제 실수를 0으로 줄였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팀이 자국 판사들이 내린 1,000건의 판결을 분석한 결과 판사들이 아침 식사를 잘하면 너그러운 판결을 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해 인간을 대체하는 수준이라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를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7년 동안 노력해도 단 1%만 해독했을 때 그는 앞으로 7년 안에 나머지 99%가 해독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레이 커즈와일은 싱귤래리티 대학을 설립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인간 고유의 능력
공감 능력
인공지능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공감 능력은 크게 빅E, 미들E, 리틀E로 구분된다. 빅E는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큼 이타적인 삶을 산 사람의 공감 능력으로 나이팅게일과 앙리 뒤낭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들E는 빅E와 리틀E 사이에 해당하며 안과 의사 김동해(‘눈을 떠요, 아프리카’ 저자)처럼 공감 능력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리틀E는 지역사회에서 이타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공감 능력으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람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래에는 예수처럼 깊은 공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만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 상상력
창조적 상상력은 빅C, 미들C, 리틀C로 나눌 수 있다. 빅C는 빅E를 통해, 미들C는 미들E를 통해, 리틀C는 리틀E를 통해 발휘되는 창조적 상상력이다. 빅C는 인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길 정도의 창의력으로 보청기와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대표적이다. 미들C는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창시자인 패드리샤 무어처럼 노인으로 변장해 116개의 도시를 다니며 얻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발휘된 창의력이다. 리틀C는 일상 문제 해결에 발휘되는 창의력으로 이지성 작가의 목조 주택 욕실 누수 문제를 해결한 지인 건축가가 예다.
느낀 점
2016년 알파고 이후 2023년, 한국은 ChatGPT의 등장으로 또다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단순한 이벤트였다면 ChatGPT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앞으로는 의사를 포함한 여러 전문 직군에서 인공지능을 관리하거나 감독하는 사람,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사람, 또는 새로운 지식을 연구하는 역할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지성 작가는 이런 미래에 중요한 역량으로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특히 창조적 상상력은 공감 능력에 기초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길러야 할 덕목은 공감 능력이라는 것이다. 대구광명학교에서는 2020년부터 시각장애 졸업생들을 위해 3D프린터로 제작한 앨범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는 한 선생님의 기획으로 경북대학교에서 제작된 것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이 선생님은 리틀E에 해당하는 공감 능력을 지닌 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료를 받을 때에도 궁금한 점을 모두 물어보지 못하고 나올 때가 많다. 바쁜 간호사나 의사에게 내 질문을 모두 던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단 정확도에서 인공지능 의사가 인간 의사를 앞지른다 하니 나도 빨리 인공지능 의사와의 진료를 경험해 보고 싶다. 궁금한 부분들을 세세하게 물어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리틀E를 지닌 대구광명학교의 선생님과 미들E의 패트리샤 무어를 기억하며 그들을 닮아가려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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